심복

우리 회사에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다 보면,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심복', 즉 '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1]

지난 10년간의 창업을 돌이켜 보면 우리 회사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직원은 없었습니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서 운 좋게 회사를 수익을 낼 수 있는 궤도에 올렸지만, 절반의 시간은 제가 혼자서 이끌어왔습니다. 저 스스로가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이 있었고, 굳이 심복이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이에게 맡기느니 제가 직접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일해 왔었죠.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더 큰 성장'이 필요하다고 느낀 저는 위임의 필요성을 깨닫고 직원 규모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폐업한 지금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저와 함께했던 이들 중에서 진정한 심복이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심복이라고 착각하고 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수년간 근속한 직원들의 충성심에 감사해하며 그들을 심복이라 여기고, 금 몇 돈을 선물해 주고 축하해 주기도 했습니다. 심복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회사가 성장을 멈추고 정체하면서부터 였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직면하자마자, 그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태업을 하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다양한 핑계를 들어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더군요.

그제서야 저는 '심복'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옆에서 지켜보고, 회사의 어려운 순간에 좌충우돌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죠. 개인의 이익을 넘어 회사의 이익을 조금이나마 더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 회사의 DNA가 만들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회사가 어려울 때일수록 심복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모두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며,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의 입장에서는 절망스럽고 안타까운, 때로는 인류애를 상실하는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난관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동반자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설득이 안되는 일들을 되게끔 만들고, 회사의 분위기를 다잡아 주는 데 심복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대부분의 직원은 대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대리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대표의 뜻을 잘 이해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은 조직에 반드시 필요하며, 심복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저에게 강력한 심복이 있었다면, 위기 상황에서 직원들을 설득시키고 동기부여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 창업자에게는 내 뜻을 따라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혹자는 그들을 고인물이라 비난할 수 있지만, 회사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아는 이들이 회사에 남아있다는 것은 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심복의 입김이 너무 세진다면 팀 간 분쟁,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과 같은 부작용 또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심복이 부재함으로써 생기는 어려움들을 깨달았으니, 다음 창업 시에는 이를 보완해서 좀 더 단단한 팀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누가 좋은 심복인가, 어떻게 찾아내고 키울 수 있을까는 저에게 놓여진 새로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1] 이 단어가 다소 권위적으로 들릴 수 있음에도 '동료'라는 표현 대신 선택한 이유는, 스타트업에서는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결정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권한이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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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의 길

Paul Graham의 Founder Mode를 읽고 든 생각입니다.

10년 간 운영하던 회사를 폐업한 이후 만난 분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내가 '만드는 것'은 잘 할 지 몰라도 '경영을 하는 것'은 잘 못했던 것 같다는 얘기를 계속 몇번이고 되뇌였습니다.

'만드는 것'과 '경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습니다.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은 창업자 개인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경영은 팀원들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경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각종 SNS와 책들을 뒤졌고, 모두가 하나같이 '위임'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위임은 회사 성장을 위한 만능 해결책이 되지 못했습니다.

대표가 너무 과도하게 마이크로매니징을 한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기회를 줬을 때는 양질의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위임은 단순히 본인의 낮은 퍼포먼스를 감추려는 핑계에 불과했던 것이죠. 또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위임을 하고 나서도 본인에게 주어진 자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년간의 노력 끝에, 회사의 성장은 정체되고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동안의 행동과 생각들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저는 너무나 많은 글들과 피드백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페이스북/링크드인 같은 SNS, 각종 경영 전문가들의 도서, 직원들의 피드백, 잡플래닛 리뷰까지. 하지만 그들은 우리 회사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성장을 도와주겠다'는 말로 접근했지만, 우리 회사에서 무언가를 가져갈 수는 있어도 어려움을 함께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시중의 경영 서적이나 일반론적인 조언들은 대부분 '전문 경영인'을 위한 것입니다. 전문 경영인은 회사에 궁극적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본인의 연봉 값어치만 증명하면 되고, 실적이 좋지 않아도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기 실적을 위해 회사의 근간을 흔들거나, (자신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직원 복지에만 집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업자의 마인드셋은 달라야 합니다.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소신을 갖고, 세간의 비난과 이견은 한귀로 흘리며,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를 위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모두를 포용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창업자의 숙명입니다.

 

내가 고용한 사람들, 나에게 조언을 주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내 이해관계는 본질적으로 일치하지 않을 수 밖에 없으므로, 목표를 위해 그들을 잘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임이 필요하다며 무작정 맡기고, 성과가 나오지 않아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PG가 말한 '전문 사기꾼을 고용해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이겠죠.

왜 사업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그 답에 맞는 경영 방식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창업자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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