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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정리하고 나서, 앞으로 다시 사업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연히 접한 Paul Graham의 'Ramen Profitable'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제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Graham은 이 글에서 큰 투자 후 큰 수익을 창출하는 기존 스타트업의 통념과 달리, 창업자들의 기본적인 생활비를 겨우 충당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대해 다룹니다. 제가 만들었던 회사도 이렇게 시작했었고, 이후 큰 투자를 유치하게 되었는데요. 그 때로 돌아가 제가 왜 55억원의 투자 금액을 유치하였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그 당시 서비스의 급격한 성장에 힘입어 회사의 비즈니스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기세에 이어서 더 큰 규모의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경험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투자를 받게 되면 대외 인지도가 높아져 후속 투자 유치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고, 더 큰 자본을 조달할 때의 책임감에 대해서도 겪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큰 돈을 받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이를 감당하기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투자를 받게 되면 후속 자본 유치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더 큰 성장에 대한 압박도 받게 됩니다. 제가 운영했던 회사는 계속 흑자를 달성했었지만, 그럼에도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감을 상당히 느꼈습니다.
외형적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 더 많은 인력과 자본이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늘렸지만, 기대한 만큼의 결과는 나오지 않고 오히려 사람에 대한 고민만 더 늘어났습니다. 다른 회사와 비교하며 조바심을 내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제 모습도 볼 수 있었고요. 명확한 방향을 정해놓지 않고 투자를 받아서였는지, 앞으로 회사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끝없는 고민이 있었지만, ‘주주가 기대한 만큼의’ 외형적 성장을 이뤄낼 마땅한 묘안을 찾기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돌이켜 봅니다. 저에게 정말로 투자가 필요했을까요? 우리 회사는 전형적인 Series B Trap[1]에 갇혀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글의 내용처럼 감당 불가능한 수준의 지출을 하여 회사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 또는 외부로부터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무리한 결정들이 회사의 본질을 해치고 어느 순간에는 결국 사업을 시작한 이유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투자를 받았을 때 투자사에게 10배의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기업 가치를 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내수 시장에서 이 정도의 규모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시리즈 A 기업 가치를 100억으로 봤을 때, 1000억의 기업 가치를 만들려면 PER 20 기준 연간 5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야 합니다. 성장 단계에 있는 회사에 이러한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겠다는 약속으로 투자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당시의 저는 이런 책임의 무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투자 이후의 밝은 청사진에 눈이 멀어 있었죠.
물론 큰 이익에는 큰 책임과 리스크가 따릅니다. 창업가에게 리스크를 견딜 수 있는 자질이 있다면 충분히 해 볼만한 선택이 됩니다. 지난 창업에서 느낀 건, 저 혼자서 시작했고 혼자서 운영을 감당할 수 있는 서비스라면, 굳이 외형을 늘릴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직원을 고용함으로써 생기는 인사 조직관리의 어려움은 물론, 사무실 비용 등 너무나 많은 불필요한 비용들이 추가로 발생하게 됩니다. 제품 개발과 별개로 피드백과 성과 관리에도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하고, 조금만 어긋나더라도 이를 바로 잡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어쩌면 회사가 망할 때까지 고칠 수 없는 찌든 때가 되어 회사의 문화에 침식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결국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건강을 해쳐가면서 이런 성장을 강요받고 있는 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죠. 당장 오늘 하루가 행복해야 하는 저에게 있어서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회사가 유니콘을 목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저는 이제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더 큰 회사보다 혼자서 오랫동안 서비스한 회사들에 더 눈이 가고, 더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2]. 오래 가는 회사를 만드는 것은 철저한 비용 통제와 규율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저는 앞으로 급격한 성장보다는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그릇의 크기를 받아들이고, 이런 방향이 저에게 더 잘 맞는 옷이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1] 시리즈 B 투자
유치 후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현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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